
다산 정약용의 어린 시절
다산 선생님의 이름은 약용? 귀농?
다산(茶山) 정약용(丁若鏞) 선생님은 1762년 6월 아버지 장재원의 고향인 마재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어요. 위로 약현, 약전, 약종 이렇게 세 명의 형과 누나 한 명이 있었지요. 다산 선생님의 어렸을 때의 이름은 ‘’이었어요. 다산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오고 나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‘귀농’이라고 지으셨대요. 다산 선생님이 어른이 되어 새로 지은 이름이 우리가 알고 있는 ‘약용’인데, 이 이름은 ‘같을 약(若)’에 ‘종 용(鏞)’으로 종소리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리라는 뜻이에요. 다산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름처럼 나중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답니다.
눈썹이 세 개인 아이, 삼미자(三眉子) 정약용
조선 시대의 위대한 학자, 다산(茶山) 정약용 선생님은 두 살 때 천연두에 걸려 열이 많이 나고 크게 아팠어요. 당시에는 천연두가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부모님의 지극정성 간호 덕분에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. 하지만 오른쪽 눈썹에 작은 흉터가 남게 되었어요. 흉터 때문에 눈썹이 중간에 끊겨 언뜻 보면 눈썹이 세 개인 것처럼 보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‘세 개의 눈썹을 가진 아이’라는 뜻에서 삼미자(三眉子)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어요.
어린 정약용은 특별한 눈썹만큼이나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자라났어요. 그는 네 살 때 이미 천자문을 익혔고 일곱 살 무렵에는 어른들도 깜짝 놀랄 만큼 깊이 있는 시를 짓기 시작했어요. 특히 7세 때 지은 ‘산(山)’이라는 시에서는 “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멀고 가까운 거리가 다르기 때문”이라며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어요.
책 읽기를 무엇보다 좋아했던 소년 정약용은 열 살이 되던 해, 그동안 자신이 정성껏 써 내려간 글과 시들을 차곡차곡 모았어요. 그리고 자신의 별명을 따서 직접 『삼미자집(三眉子集)』이라는 이름을 붙인 문집을 만들었어요.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을 펴낼 만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답니다.
이 ‘삼미자’라는 별명은 훗날 다산 선생님이 평생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책을 저술하며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성장하게 되는 소중한 씨앗이 되었어요. 몸에 남은 흉터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킨 소년 정약용의 당당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.
- 귀농(歸農) —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려고 시골로 돌아간다.

